김유신의 칼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648년 김춘추는 바다 건너 당나라에 가서, 당 태종에게서 군사를 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돌아오는 바다에서는 따르던 온군해가 높은 관과 큰 옷 차림으로 배 위에 앉아 있다가, 그를 김춘추로 여긴 고구려 순라병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654년, 김춘추는 왕위에 올랐다. 태종 무열왕이다.
등장인물
신라의 장수
김무력의 아들
신라 왕족의 딸
나타난 노인
막내 누이
뒷날의 태종 무열왕
648년, 군사를 청하러 당나라에 간 김춘추에게 당 태종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들었다. 어떤 사람이냐?
조금 있을 뿐이옵니다.
이웃의 근심을 덜 수 있사옵니다.
당나라 황제도 그 이름을 들었다는 신라의 장수.
김유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야기는 반세기를 거슬러, 그가 태어난 595년 무렵으로 돌아간다.
김유신의 집안은 본래 가야의 왕족이었다.
532년 금관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했다. 그 막내아들 김무력은 신라의 장군이 되어 554년 관산성에서 백제군을 무찔렀다.
김무력의 아들 서현은 길에서 한 아가씨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만명은 진흥왕의 아버지 입종 갈문왕의 손녀였다. 두 사람은 중매도 거치지 않고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만명을 데려가려 하자, 그제야 이 일을 안 아버지 숙흘종은 크게 노했다.
별채에 가두고 지켜라!
만노군으로 가오!
벼락이 별채의 문을 때려 지키던 이들이 허둥대는 사이, 만명은 담 구멍으로 빠져나와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떠났다.
내게로 내려온다!
구름을 타고…!
『삼국사기』는 서현이 화성과 토성 두 별이 내려오는 꿈을, 만명이 금 갑옷을 입은 아이가 구름을 타고 집 안에 드는 꿈을 꾸었다고 전한다.
595년, 만명은 아이를 가진 지 스무 달 만에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좋은 꿈을 꾸고 얻은 아이요.
‘유신’이라 합시다!
날짜(경진·庚辰)로 이름을 짓지 않는 예법을 따라, 庚과 꼴이 닮은 庾(유), 辰과 소리가 비슷한 信(신)을 골랐다. 『삼국유사』는 아이의 등에 일곱 별 무늬가 있었다고 전한다.
609년, 열다섯 살 김유신은 화랑이 되었다.
사람들이 기꺼이 그를 따랐다. 그 무리를 ‘용화향도’라 불렀다.
611년. 고구려와 백제, 말갈이 잇달아 신라 땅을 침범했다. 열일곱 살 김유신은 홀로 중악의 돌굴에 들어갔다.
우리 땅을 어지럽힙니다.
제게 힘을 빌려주소서!
그는 몸을 깨끗이 하고 하늘에 맹세했다.
나흘째 되던 날, 거친 베옷을 입은 노인이 찾아왔다.
귀한 소년이 어찌 홀로 있소?
존함을 여쭙고 싶습니다.
이름은 난승이라 하오.
가르쳐 주소서!
노인은 말이 없었다. 김유신은 눈물을 흘리며 예닐곱 번이나 거듭 청했다.
아우를 마음을 품었구나. 장하도다.
도리어 재앙을 받으리라.
말을 마친 노인은 떠났다. 이 리(里)쯤 갔을 무렵, 김유신이 뒤쫓아 가 바라보았지만—
노인은 보이지 않고, 산 위에 오색 빛만 찬란했다.
이듬해 612년, 이웃 나라의 위협이 더욱 거세지자, 열여덟 살 김유신은 보검 한 자루를 들고 홀로 열박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다시 비옵니다…
그는 향을 피우고, 중악에서처럼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사흘째 밤, 허성과 각성 두 별의 빛살이 환하게 아래로 드리워졌다.
도리어 재앙을 받으리라.
칼이 저절로 흔들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백석과 세 호국신
『삼국유사』가 전하는 옛이야기
국선 김유신의 무리에 백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몰래 적국을 엿보러 가자는 그의 말에, 김유신은 밤길에 나섰다.
지키는 신이오.
꾀어 데려가고 있소!
가는 길에 만난 세 여인이 그를 숲으로 이끌더니, 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김유신은 두고 온 문서를 핑계로 집에 돌아와, 백석을 묶고 캐물었다.
고구려 사람이오…
해치려고 나를 보냈소.
김유신은 백석을 벌하고, 갖은 음식을 차려 세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몇 해 뒤 어느 아침, 김유신의 누이 보희가 꿈 이야기를 꺼냈다. 서쪽 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잠겼지 뭐야!
나한테 팔아!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샀다.
며칠 뒤, 김유신은 집 앞에서 벗 김춘추와 공차기(축국)를 하다가 그의 옷자락을 밟아 옷끈을 떨어뜨렸다.
우리 집이 가까우니
들어가 꿰매시지요.
『삼국유사』는 김유신이 일부러 그랬다고 전한다.
김유신은 누이 보희에게 옷끈을 꿰매 드리라 했지만, 보희는 나오지 않았다.
귀한 분 곁에 가겠어요…
대신 나온 막내 문희는 옅은 화장에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눈부시게 고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희가 아이를 갖자 김유신은 ‘누이를 불태우겠다’고 짐짓 소문을 내고, 여왕이 남산에 오르는 날 마당에 연기를 피웠다.
어서 가서 구하라!
얼굴빛이 확 변한 김춘추는 말을 달려 가 여왕의 명을 전했고, 두 사람은 떳떳이 혼례를 올렸다.
그로부터 몇 해 뒤.
629년 가을, 신라는 고구려의 낭비성을 쳤다.
장군 서현, 그리고 서른다섯 살의 아들 김유신도
그 싸움터에 있었다.
고구려군이 성에서 나와 맞받아치자, 신라군은 많은 군사를 잃고 싸울 마음마저 잃었다.
물러나!
중당의 당주였던 김유신은 아버지 앞에 나아가 투구를 벗었다.
싸움에서 비겁할 수 없습니다.
벼리를 당겨야 그물이 펼쳐지는 법.
벼리가 되겠습니다!
김유신은 말에 올라 칼을 뽑고, 구덩이를 뛰어넘어 적진으로 내달렸다.
『삼국사기』 본기는 그가 세 번 들어갔다 세 번 나오며, 그때마다 장수를 베거나 깃발을 빼앗았다고 적었다.
신라군이 북을 울리며 뒤따라 들이쳤다.
5천여 명을 베고 1천 명을 사로잡자, 낭비성 사람들은 두려워 모두 나와 항복했다.
642년,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무너뜨렸다.
도독 김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가 목숨을 잃었다. 고타소는 김춘추의 딸이었다.
두 사람의 뼈는
백제 땅 감옥에 묻혔다.
648년, 압량주의 군주 김유신은 몇 달째 술을 마시고 풍악을 즐기며 지냈다.
넉넉해졌구나.
장군은 저리 게으르니!
『삼국사기』 열전은 이때를 김춘추가 당나라에 가 있던 무렵이라고 적었다.
대야성의 원수를
갚게 해 주소서.
건드리다 위태로우면
어찌하오?
사람들의 마음에 달렸사옵니다.
김유신은 대야성 밖에서 백제군과 맞서다가, 짐짓 진 척 옥문곡까지 물러났다.
얕잡아 본 백제군이 몰려들자 숨어 있던 신라군이 앞뒤에서 들이쳐, 백제의 장수 여덟을 사로잡았다.
너희 감옥에 묻혀 있다.
너희 장수 여덟을 바꾸자.
두어도 쓸데없으니,
돌려보내시지요.
백제는 품석 부부의 뼈를 파내어 나무 궤에 담아 보냈다.
무성한 숲이 줄지 않고,
큰 산이 커지지 않는 법.
김유신은 약속대로 백제 장수 여덟을 살려 보냈다.
당나라에 갔던 김춘추가 돌아왔다.
살아 돌아와 공을 다시 보는구려.
모셔 왔습니다. 하늘이 도운 것이지,
제 힘이 아닙니다.
품석 부부의 뼈는 그렇게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대야성이 무너진 지 여섯 해 만이었다.
654년, 진덕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김유신은 재상 알천과 뜻을 모아, 김춘추를 왕으로 맞았다.
태종 무열왕이다.
660년 정월, 김유신은 상대등이 되었다. 5월 26일, 무열왕과 김유신은 군사를 이끌고 서라벌을 나섰다.
세 나라를 아우를 마음을 품었구나.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도 곧 바다를 건너올 참이었다.
열여덟 살 때 별빛을 받았다는 칼.
그 칼을 품었던 소년이, 이제 예순여섯의 장수가 되어 백제로 향한다.
7월, 황산벌에서 백제의 장군 계백이
오천 결사대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